숨을 멈추면 순환계의 전략도 달라진다
평소 심장과 혈관의 역할은 비교적 분명하다. 폐에서 받아들인 산소를 혈액에 실어 온몸으로 보내고, 조직에서 만들어진 이산화탄소를 다시 폐로 운반한다. 하지만 숨을 멈추면 폐를 통해 새로운 산소를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순환계가 사용할 수 있는 산소의 총량에는 한계가 생긴다.
이때 몸은 모든 조직에 평소와 같은 방식으로 혈액을 공급하기보다, 제한된 산소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순환을 조절한다. 심박수가 감소하고, 말초혈관이 수축하며, 혈류가 중요한 장기로 집중되는 변화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반응은 서로 따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을 가진 통합적인 반응에 가깝다. 새로운 산소를 얻을 수 없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산소를 오래 사용하도록 배분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심박수는 왜 느려질까
프리다이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심혈관 반응은 서맥(bradycardia), 즉 심박수 감소다. 무호흡과 얼굴 침수가 결합되면 부교감신경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심장이 뛰는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심장이 느리게 뛰면 단위시간 동안 심장이 사용하는 산소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동시에 말초혈관 수축과 함께 작용하면서, 제한된 혈액과 산소를 뇌와 심장처럼 산소 부족에 민감한 기관에 우선적으로 공급하는 데 기여한다.
다만 모든 사람의 심박수가 같은 정도로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물의 온도, 무호흡 시간, 운동강도, 얼굴 침수 여부와 개인의 자율신경 반응에 따라 차이가 크며, 훈련된 프리다이버에서도 개인차가 나타난다.
따라서 프리다이빙에서 심박수가 낮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수행능력을 판단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심박수 감소 자체보다, 심장과 혈관이 함께 작동해 산소소비와 혈류분포를 조절한다는 점이다.
얼굴을 물에 담그면 반응이 더 강해질 수 있다
육상에서 숨을 참는 것과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은 완전히 같은 조건이 아니다. 특히 얼굴이 물에 닿으면 삼차신경을 비롯한 감각신경을 통해 다이빙 반응을 강화하는 신호가 전달될 수 있다.
차가운 물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으며, 심박수 감소와 말초혈관 수축도 커질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 동안 숨을 참더라도, 육상에서의 무호흡과 얼굴을 물에 담근 상태의 무호흡에서 심혈관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프리다이빙에서 말하는 다이빙 반응은 단순히 ‘숨을 참아서 심장이 느려지는 현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무호흡과 얼굴 침수, 수온, 저산소와 이산화탄소 증가 등 여러 자극이 함께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지는 반응이다.
혈관은 왜 수축할까
심장이 느려지는 동시에 팔과 다리 같은 말초조직의 혈관은 수축한다. 이를 말초혈관 수축(peripheral vasoconstriction)이라고 한다.
말초혈관이 수축하면 근육과 피부 등으로 향하는 혈류가 감소하고, 상대적으로 뇌와 심장 같은 주요 기관의 혈류를 유지하기 쉬워진다. 무호흡 상태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산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조직에 평소와 같은 수준으로 산소를 공급하는 것보다 생명유지에 중요한 기관을 우선하는 전략이 유리하다.
이것을 혈류의 재분배 또는 중심화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몸 전체의 혈액이 갑자기 뇌와 심장으로 몰리는 것은 아니지만, 말초의 혈관저항을 증가시켜 혈류의 분포를 바꾸는 것이다.
프리다이빙에서 손과 발보다 뇌와 심장을 우선한다는 설명은 바로 이 현상을 의미한다. 몸은 산소가 부족해질 가능성이 커지면, 모든 기관을 똑같이 대하는 대신 우선순위를 만들기 시작한다.
심박수는 내려가는데 혈압은 올라갈 수 있다
심박수가 느려지면 혈압도 함께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무호흡 중에는 오히려 혈압이 상승할 수 있다. 말초혈관이 강하게 수축하면서 혈액이 지나가야 할 저항이 커지기 때문이다.
심장은 느리게 뛰면서 산소소비를 줄이지만, 혈관은 수축해 중요한 장기의 관류압을 유지하려 한다. 서로 반대처럼 보이는 두 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산소 보존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수행한다.
깊은 무호흡 다이빙이나 강한 다이빙 반응에서는 혈압 상승이 상당히 크게 나타난 사례도 보고되어 있다. 특히 차가운 물, 긴 무호흡, 깊은 수심처럼 여러 자극이 겹치면 심혈관계에 가해지는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다이빙 반응을 단순히 몸이 느려지고 안정되는 현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내부에서는 심박수 감소와 혈관 수축, 혈압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며, 상당히 적극적인 순환계 조절이 진행되고 있다.
심장이 보내는 혈액의 양도 달라진다
심장이 1분 동안 몸으로 보내는 혈액의 양을 심박출량(cardiac output)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심박출량은 심박수와 한 번 수축할 때 내보내는 혈액량에 의해 결정된다.
무호흡 다이빙에서는 심박수가 감소하고 말초혈관이 수축하면서, 심박출량도 감소할 수 있다. 몸 전체에 많은 혈액을 빠르게 순환시키기보다, 제한된 혈류를 필요한 곳에 배분하는 방향으로 순환계가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프리다이빙에서는 무호흡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물속에 들어가면 수압에 의해 말초의 혈액이 흉부 쪽으로 이동하고, 수직하강에서는 압력이 계속 증가하며, 동시에 근육도 움직인다. 따라서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액량과 심장이 받는 부담은 육상에서 가만히 숨을 참을 때와 다르다.
깊은 수심의 프리다이빙을 이해하려면 심박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혈압과 심박출량, 혈액의 중심부 이동까지 함께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비장은 혈액을 저장하는 작은 저장고 역할을 한다
무호흡에 반응하는 기관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비장이다. 비장은 면역기능을 담당하는 동시에 일정량의 혈액을 저장할 수 있으며, 무호흡이나 저산소 자극을 받으면 수축해 저장되어 있던 적혈구 일부를 순환혈액으로 내보낼 수 있다.
적혈구 안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들어 있다. 따라서 비장이 수축하면 혈액 속 헤모글로빈 농도가 일시적으로 증가하고, 결과적으로 혈액의 산소 운반능력이 조금 높아질 수 있다.
이 반응은 반복적인 무호흡에서 특히 흥미롭다. 여러 차례 무호흡을 반복하면 비장의 크기가 감소하고,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가 증가하는 현상이 연구에서 관찰되어 왔다.
한국의 전통적인 해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잠수 후 비장의 수축과 혈액 변화가 관찰됐으며, 이후 경쟁 프리다이버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무호흡에 따른 비장 수축이 확인됐다.
비장은 프리다이빙에서 새로운 산소를 만들어내는 기관이 아니다. 이미 몸 안에 있는 적혈구를 필요할 때 순환계로 추가 투입하는 저장고에 가깝다.
적혈구와 헤모글로빈은 왜 중요할까
혈액이 산소를 운반할 수 있는 핵심 이유는 적혈구 안에 있는 헤모글로빈 때문이다. 산소 대부분은 혈액 속에 단순히 녹아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헤모글로빈과 결합해 운반된다.
따라서 혈액량과 헤모글로빈 농도, 전체 헤모글로빈량은 몸이 저장하고 운반할 수 있는 산소량과 관련된다. 지구력 운동선수에게 혈액의 산소 운반능력이 중요한 것처럼, 외부 산소 공급 없이 활동해야 하는 프리다이버에게도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장기간 프리다이빙을 하면 누구나 헤모글로빈량이 크게 증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훈련된 무호흡 다이버에게서 강한 비장 수축이 관찰된 연구가 있는 반면, 전체 헤모글로빈량 자체는 지구력 운동선수처럼 높지 않았다는 연구도 있다.
즉, 무호흡에 따른 일시적인 비장 수축과 장기간 훈련에 따른 혈액의 구조적 적응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반복적인 무호흡은 순환계 반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프리다이빙 훈련을 반복하면 단순히 숨을 참는 데 익숙해지는 것만은 아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짧은 기간의 반복적인 무호흡 훈련만으로도 다이빙 서맥이 더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는 변화가 관찰됐다.
이는 무호흡 훈련이 자율신경계와 심혈관 반응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보여준다. 숙련된 프리다이버에게서 일반인과 다른 심혈관 반응이 나타나는 것도 반복적인 무호흡과 잠수 경험에 대한 적응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선천적인 개인차와 훈련 효과를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다. 원래 강한 다이빙 반응을 가진 사람이 프리다이빙에서 높은 수행능력을 보일 가능성도 있고, 오랜 훈련을 통해 반응이 강화됐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숙련된 프리다이버의 특징을 모두 훈련의 결과라고 단정하기보다는, 타고난 특성과 반복적인 훈련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강한 다이빙 반응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심박수를 낮추고 말초혈관을 수축시키는 다이빙 반응은 산소 보존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반응이 강하다고 무조건 건강에 좋거나, 강할수록 좋은 프리다이버라는 의미는 아니다.
무호흡 중에는 심장을 느리게 만드는 부교감신경의 작용과, 혈관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교감신경의 작용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깊은 다이빙이나 강한 저산소 상태에서는 이러한 자율신경계의 강한 자극과 압력 변화가 겹치며, 일부 연구에서는 심장 리듬의 변화가 관찰되기도 했다.
특히 극단적인 수심과 긴 무호흡을 다룬 연구에서 매우 낮은 심박수, 높은 혈압과 부정맥이 보고된 사례가 있다. 이는 인간에게 다이빙 반응이 존재한다고 해서, 해양 포유류처럼 극단적인 잠수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프리다이빙의 생리적 적응은 인간이 가진 한계 안에서 작동하며, 그 한계를 없애주는 장치는 아니다.
심장과 혈액은 산소의 사용순서를 바꾼다
프리다이빙에서 심장과 혈액의 반응을 하나씩 보면 복잡해 보이지만, 전체 방향은 비교적 단순하다. 심장은 박동수를 줄이고, 말초혈관은 수축하며, 혈류는 중요한 기관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재분배된다. 비장은 저장하고 있던 적혈구 일부를 순환계로 내보내 혈액의 산소 운반능력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 모든 반응이 새로운 산소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프리다이버가 수면에서 들이마신 뒤 가지고 들어간 산소의 양에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으며, 순환계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산소를 보다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프리다이빙에서 심장과 혈액이 하는 일은 산소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산소를 어디에 먼저 쓰고 얼마나 오래 보존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심박수 감소, 말초혈관 수축, 혈압 변화와 비장 수축이 서로 다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두 하나의 문제, 즉 호흡할 수 없는 시간 동안 뇌와 심장을 비롯한 중요한 기관의 기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생리적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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